(서울=뉴스1) 김성식 기자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현대자동차(005380)·기아(000270)를 비롯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러시아에서 철수한 사이 현지 시장이 중국 자동차 업체 위주로 빠르게 재편된 것으로 파악됐다. 여기에 더해 러시아 정부가 비(非)관세 장벽을 높이고 있어 향후 현대차·기아가 현지 시장에 재진출하더라도 극복해야 할 난관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한국자동차연구원(KATECH)은 9일 이런 내용을 담은 '러·우 전쟁 발생 후 러시아 시장 변화와 전망'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러우 전쟁 발발 직전 해인 2021년 러시아 신차 시장에서 10% 미만이던 중국 브랜드 점유율은 지난해 50%를 돌파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체 수입 신차 중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80%에 육박했다.
이는 2022년 2월 러우 전쟁 발발로 서방의 대(代)러 제재가 시작되자 현대차, 르노, 도요타 등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들이 현지 생산 시설을 매각하고 철수했기 때문이다. 글로벌 제조사 철수로 생산 능력이 크게 위축되자 러시아 정부는 공급난 해소를 위해 2022년 10월부터 한시적으로 병행수입을 허용했고, 중국 등 서방 제재 불참국으로부터 관련 수입을 확대했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는 최근 병행수입 조건을 강화하고 재활용 수수료를 대폭 인상하는 등 수입차에 대한 비(非)관세 장벽을 높이고 있다. 2023년 10월부터 자국에 공식 판매처를 둔 브랜드 차량의 병행수입을 금지하고, 중국 등 우호국 브랜드에도 약식 승인이 아닌 형식 승인을 취득하도록 관련 제도를 변경했다. 재활용 수수료는 신차·중고차를 등록할 때 배기량·연식 등에 따라 부과되는데 현지 생산기업에는 환급되므로 사실상 관세와 같은 역할을 한다. 지난해 10월부터 최대 85% 인상됐다.
러시아 정부가 이처럼 수입차 정책을 선회한 건 중국 브랜드들이 자국 산업 재건에 기여하지 못했다는 판단에서다. 러시아 현지에서 자동차를 자체 생산하는 중국 업체는 장성기차(GWM)가 유일하며 다른 브랜드들은 러시아 제조사에 위탁 생산을 맡기거나 병행수입에만 의존하고 있다. 러시아에 진출한 중국 브랜드는 수십 개에 달하지만 현지 생산 체계를 갖춘 브랜드는 10개 미만에 불과하다.
이 여파로 올해 1~2월 중국의 대러 자동차 수출량은 전년 동기 대비 절반으로 감소했다. 그럼에도 중국 업체들은 러시아 정부의 추가 견제 가능성과 종전 이후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의 재진출 등을 고려해 현지 생산 체계 구축 등 대규모 투자를 주저하는 분위기다. 중국 브랜드는 가격이 저렴하지만, 한국·일본·유럽 브랜드 대비 내구성이 약하다는 현지 언론 보도도 최근 잇달아 나왔다.
다만 중국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빠르게 개선되고 있어 현대차를 비롯한 글로벌 제조사들이 현지 시장에 재진출해도 과거의 높은 점유율을 쉽게 회복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고 한국자동차연구원은 전망했다. 러시아 정부가 자국 산업 육성을 목표로 비관세 장벽을 높이고 있는 만큼 글로벌 제조사의 자국 시장 재진출에도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울 가능성도 있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은 "러시아 시장은 다양한 차원에서 높은 불확실성을 내재하고 있어 글로벌 제조사는 재진출 의사결정에 앞서 다양한 시나리오 및 대응 전략 수립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며 현대차·기아 등 우리 기업을 상대로 중국 브랜드와의 차별화를 위해 품질 역량을 강화하는 한편 애프터서비스(AS) 체계를 구축하는 방안을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