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윤주영 기자 = 국내 연구진이 고위험 인수공통바이러스의 자연 숙주인 박쥐를 활용해 세계 최대 규모의 실험모델을 구축했다. 동물의 장기 세포 등을 인공적으로 배양한 '미니장기' 오가노이드를 활용했다.
16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기초과학연구원(IBS) 원내 최영기 한국바이러스기초연구소 소장, 구본경 유전체교정연구단장 등 연구진은 한국에 서식하는 박쥐를 활용해 장기 오가노이드를 구축했다.
박쥐는 사스코로나-2, 메르스코로나, 에볼라, 니파 등 다수의 고위험 인수공통바이러스의 자연 숙주로 알려졌다. 팬데믹을 일으킬 잠재적 위협이다.
이런 바이러스의 증식·전파 특성을 조기 규명할 수 있는 연구가 필요하지만, 연구용 모델이 부족했다. 확보된 모델들도 일반 세포주 또는 열대 과일박쥐 일부 종에서 얻은 단일 장기 오가노이드가 전부였다.
다양한 박쥐 종과 조직 특성을 반영하기엔 역부족이란 의미다.

이에 연구진은 박쥐 5종의 기도·폐·신장·소장 등 다조직 오가노이드를 구축했다. 한국 등서 서식하는 식충성 박쥐인 애기박쥐과와 관박쥐과 등이 활용됐다.
연구진은 오가노이드를 활용해 코로나, 인플루엔자, 한타 등 바이러스의 감염 양상과 증식 특성을 규명할 수 있었다.
우선 고위험 바이러스들은 각각 특정 종이나 장기에서만 감염·증식하는 양상을 보였다.
특히 한타바이러스는 박쥐 신장 오가노이드에서 활발히 증식했다.

또 연구진은 오가노이드에 다양한 바이러스를 감염시켜 봤다. 이를 통해 박쥐 종·장기·바이러스에 따라 선천성 면역 반응이 달라짐을 확인했다.
박쥐가 바이러스 방어 메커니즘을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연구진은 야생 박쥐 분변서 추출된 바이러스 2종을 오가노이드에서 증식시켜, 오가노이드가 생체 장기환경을 제대로 모사하고 있는지를 확인해 봤다.
그 결과 샤브 유사 바이러스가 박쥐 오가노이드에서 효과적으로 증식하는 게 확인됐다. 이 바이러스는 일반적인 세포 배양 방식으론 증식이 어렵다.

이 밖에도 연구진은 오가노이드를 2차원으로 배양, 고속 항바이러스제 스크리닝 성능을 개선했다. 기존 3차원 오가노이드는 모양·크기가 균일하지 못해 자동화된 실험이나 분석·평가가 힘들었다.
2차원 오가노이드서 렘데시비르 등 항바이러스제의 효과를 측정한 결과 개선된 성능이 확인됐다.
김현준 IBS 선임연구원은 "그간 세포주 기반 모델로는 어려웠던 바이러스 분리, 감염 분석, 약물 반응 평가를 한 번에 수행할 수 있게 됐다"며 "감염병 연구의 정밀성·실효성을 크게 끌어올린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 지에 16일 게재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