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46)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관세 전쟁을 선포하고 안보 비용에 대해 동맹의 더 큰 기여를 요구하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한미동맹만을 앞세워 '선의'를 기대하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다고 진단했다.
임 교수는 지난 24일 뉴스1과 '3040, 차기 정부에 바란다' 인터뷰를 갖고 "미국이 '선의의 패권국'이라는 말은 이제 잊어야 한다"라며 과거 '마셜 플랜'처럼 미국의 일방적인 기여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단순하게 한미 방위비분담금 자체를 인상하는 것만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향적' 태도를 이끌어내기 어려울 것이라며, 거시적 관점에서 큰 사안을 논의하겠다는 구상을 세워 거래적 차원에서 접근해 우리의 안보 우려를 보다 건실한 방향으로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북미대화 재개 시점은 우크라이나전 종전 협상이 완료된 이후부터 미국의 중간선거(2026년 11월) 사이가 될 것 같다며 "차기 정부에서 대북 사안에 대해 미국과 입장 정리를 빠르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임은정 교수와의 일문일답.
-갑작스러운 한국의 정권 교체와 미국의 압박이 제기되는 현재의 외교·안보 위기를 점수로 매긴다면(1~5점, 높을수록 위기).
▶4점. 상당한 위기라고 본다. 누가 새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사회 양극화가 너무 심해 국론을 통일하기 힘든 상황이다. 압도적 득표 차로 새 정부가 출범하더라도 국정운영 동력을 빠르게 확보하기 어려워 보인다. 승부사 스타일인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이러한 상황을 적극 이용하려 할 것으로 전망된다. 관세는 물론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 참여 등에 대한 압박이 더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차기 정부가 외교안보 정책 추진에 있어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요즘 국익을 위해 '실용 외교'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곳곳에서 나온다. 문제는 지금 정세가 단편적인 수준의 실용주의적 접근을 하기엔 너무 엄혹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과 중국의 대결 구도는 한국이 중재를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미중 사이가 좋았던 시절에도 한국이 밸런서(balancer) 역할을 못 했는데 지금은 상황이 더 나쁘다. 한국에 유리하지 않은 미중 대립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전략적 모호성과 실용주의적 접근이라는 말은 듣기엔 그럴싸해도 현실적이지 않다. 차기 정부는 좌우를 막론하고 국가안보를 얼마나 튼실하게 유지·발전시킬 수 있는지에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렇다면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무엇일까.
▶한국의 대통령제 특성상 정권 교체에 따라 정책이 바뀔 수는 있다. 하지만 외교·안보 분야에서만큼은 민족주의적 감정을 내세워 과거의 결정을 뒤집는 행보는 보수나 진보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않다.
-외교·안보 위기의 안정화를 위해 새 정부 출범 후 여야가 반드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한미동맹은 한국의 외교·안보 근간이다. 한미동맹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을 때 발생하는 비용과 리스크를 잘 계산해야 한다. 예를 들어 트럼프 행정부에서 '자체 핵무장'을 파고들 여지가 조금이라도 보인다고 할지라도 이는 우리가 적극적으로 제기해선 안 되는 의제다. 자체 핵무장을 가능하게 하려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국제사회 혹은 개별 국가의 제재를 감내해야 하는 등 리스크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국민들에게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고 단순히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니까, 우리도 갖자'는 식으로 말하면, 국민들이 오판하게 된다. 어렵게 한국의 원자로 수출 동력을 살려놨는데 핵무장론을 제기하면 이 사업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미국은 한국의 새 정부 출범 전에 현 정부와 하고 싶은 게 있어 보인다. 미국은 지금 어떤 사안이라도 빨리빨리 정리를 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한국과 일본 등 미국과 가까운 국가부터 협의를 개시한 것이다.
우리가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도 더 낼 수도 있다. 불가능하지 않다. 문제는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으로 답을 내놔봤자 트럼프 대통령이 만족하지 않을 것 같다는 점이다. 이미 기존의 판이 흔들리고 있다면 미시적 관점에서만 볼 게 아니라 거시적 관점에서 더 큰 접근법을 구사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미국 전술핵무기의 한반도 재배치를 적극적으로 주장하진 않지만, 국민들의 걱정을 감안해 이 문제를 미국과 논의는 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방위비분담금 몇 퍼센트 인상을 언급하는 건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크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방위비분담금을 더 내는 만큼 더 요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
▶지금 미국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어쨌든 전 세계 정세를 주도적으로 관리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중국 견제에 초점을 맞추고 싶고 이를 위해 한국과 일본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방위비분담금이 크게 오른다고 무조건 우려할 것이 아니라 이것에 맞는 대응 방안을 짜야 한다.
예를 들어 중국이 최근 전 세계에서 가장 성능이 좋은 '심해 케이블 절단기'를 발명해 유사시 글로벌 네트워크를 교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 주도로 기술을 개발하는 것을 반대급부로 요구하는 등 차원이 다른 발상을 해볼 수 있다.
-한미동맹은 근본적 변화의 시기를 맞은 건가.
▶미국이 '선의의 패권국'이라는 말은 이제 잊어야 한다. 일부에서 언급하는 '제2의 마셜 플랜'으로 주저앉은 유럽을 살리고 핵무기를 공유해 러시아를 막아줄 것이라는 기대는 이미 지나간 버스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이런 차원에서 과거 한미동맹을 되살린다는 표현도 의미가 없다. 즉, '한미동맹은 혈맹'이라는 말 만으론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금은 새로운 내러티브가 필요하다. 미국이 먼저 무언가를 베푼다는 것은 이제 기대할 수 없다. 조선 협력, 반도체 등 한국이 할 수 있는 것을 거래주의적 관점에서 선제적으로 제안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 창이 있고 한국이 방패가 있다면, 창과 방패로 함께 싸우자는 개념이다.
-중국의 한중관계 개선 움직임과 미국의 대중 견제 요구가 상충하는 상황이다. 미중 모두에게 미움을 받지 않을 묘책이 있을까.
▶미중 사이에서 어떻게 처신할지는 한국의 딜레마이자 고통 중 하나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미국과 중국이 잘 지냈던 시대는 다신 오지 않을 것 같다. 미중 양국 간 싸움은 인류사적 관점에선 기술패권 문제로 볼 수도 있다. 인공지능(AI)시대 인류가 어떤 국가의 체제를 중심축으로 가져갈 것인가의 싸움이다. 적어도 한 세대 가까이 이러한 미중 경쟁 구도가 이어질 것으로 본다. 양쪽에게 미움을 받지 않으려면 균형주의, 실용주의적 외교를 지향하더라도 우선순위를 잘 설정해야 한다. 중국과 대화하며 척을 지지 않으면서 우선순위는 미국에 두는 방식이 현재 우리가 택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본다.

-진보 성향의 정권이 출범하면 과거사 청산을 제기하며 한일관계가 악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과거사 문제를 마냥 묵혀둘 수도 없는 노릇인데, 어떤 접근법이 요구될까.
▶'제로섬'(zero-sum)이 아닌 '포지티브섬'(positive-sum)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일본과의 협력은 전략적 선택이기 때문에 이익이 되는 사안과 과거사 문제 해결을 투 트랙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인적 교류 1000만 명 시대를 맞이한 양국이 '출입국 간소화 조치' 등 협력할 건 협력하면서 과거사 문제는 따로 다뤄야 상호 이익이 확보된다. 'A가 해결되지 않으면 B를 못 한다'는 식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
-북미대화 재개 시점은 언제일까. 북한이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게 할 방법은 무엇일까.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대화를 원하는 것 같지만 의제가 무엇일지, 미국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명확해 보이지 않는다. 만일 대화가 시작된다면 시점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종전 문제 정리 후 미국 중간선거(2026년 11월) 전이 될 것 같다.
북한이 우리한테 관심을 보일 확률은 높지 않다. 우리가 북한의 핵을 용인할 수 없기 때문에 북한이 우리에게 관심갖게 할 유인책이 사실상 없다고 볼 수 있다. 북한 문제는 이미 남북만의 사안이 아니다. 핵 문제가 글로벌 이슈기 때문이다. 차기 정부는 북한을 어떻게 대할지 미국과 빠르게 입장 정리를 해야 한다. 한미의 의견 조율 과정에서 일본이 '딴죽'을 걸 수 있다는 것도 간과해선 안 된다.
-우크라전 종전 이후 한러관계가 회복될 수 있을까. 어떤 접근 방식이 요구되며 관계 개선의 변수는 무엇일까.
▶경제는 정직하다. 러시아가 한국과의 경제적 관계를 무시하고 북한하고만 풀뿌리를 먹진 않을 것이라고 본다. 러시아와의 경제통상 교류의 '사이즈'는 남북이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다. 유럽과 러시아가 '철의 장벽'을 쌓지 않고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갈무리된다면 한러관계는 빠르게 복원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군 포로 문제가 변수가 될 수도 있는데, 너무 인도주의적 관점으로만 접근하면 러시아가 불편할 수 있기 때문에 외교적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197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98학번으로 도쿄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한 뒤 뉴욕 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제학 석사(2005년), 존스홉킨스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박사(2012년) 학위를 취득했다. 일본 리츠메이칸대학 국제관계학부 조교수를 거쳐 현재 공주대 국제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분야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국제협력, 에너지 안보·기후변화 대응, 원자력 정책·비확산 문제, 동아시아 국제관계 등이다.
편집자주 ...뉴스1은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3040세대(30~40대) 교수와 전문가를 릴레이 인터뷰한다. 정치·외교안보·사회·경제·과학 분야에서 활동하는 소장(少狀) 학자들의 생각을 담았다. 현장과 소통하며 미래를 고민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조기 대선에 임하는 유권자의 선택에 도움이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