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강남구에서 환전소를 운영하는 A 씨는 '테더 환전' 문의에 이같이 답했다. 최근 강남 일대에선 "테더를 최저가로 거래할 수 있다"는 문구가 적힌 업장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환전은 말 그대로 서로 종류가 다른 '화폐'끼리 교환하는 행위인데 미국 달러화, 일본 엔화도 아니고 테더 환전이라니 무슨 소리일까.
테더는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다. 스테이블코인이란 비트코인, 이더리움 같은 일반 가상자산과 달리 가치 변동이 없는 가상자산(암호화폐)을 말한다. 보통 달러화 등 기존 화폐에 가치가 고정돼 있다. 시가총액 기준 1위 스테이블코인인 테더(USDT)는 달러와 1:1로 가격이 연동된다. 1USDT가 1달러라는 뜻이다.
달러는 은행에서 원화를 환전해야 구할 수 있는 미국 화폐인데 1년 365일 24시간 거래되는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살 수 있는 테더가 달러와 같은 역할을 하며 현실에서 환전까지 이뤄지고 있다.

21일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느닷없는 계엄령으로 달러·원 환율이 15년 9개월 만에 1480원을 돌파한 지난해 12월 국내 1위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에서 USDT 월 거래금액은 11조 3917억원에 달했다.
앞서 지난해 10월만 해도 업비트 내 USDT 월 거래금액은 약 1조 7604억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으로 환율이 상승한 11월에는 5조 9617억원으로 3배 이상 뛰었고 금융위기 이후 환율이 최고치를 기록한 12월에는 11조 3917억 6500만원으로 2배로 늘었다. 10월에 비하면 6배 이상 급증한 셈이다.
USDT 거래금액이 급증한 이유는 초유의 계엄사태에 정치 불확실성이 극에 달하자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달러에 수요가 쏠리면서 테더가 달러 대체재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현실 세계에서 달러 수요가 치솟듯, 가상 세계에서 달러 역할을 하는 테더 수요가 급증한 것이다.
가상자산 시장에서 스테이블코인은 일종의 '기축통화'로 쓰인다. 바이낸스처럼 원화를 지원하지 않는 해외 거래소에서 거래하려면 국내 거래소에서 해외로 코인을 보내야 하는데, 이때 많이 이용하는 게 가격변동성이 없는 스테이블코인이다. 업비트에서 테더를 구매해 바이낸스로 보낸 후, 바이낸스 내 USDT마켓에서 테더로 다른 코인을 매수하는 식이다.
최근에는 달러 보유 용도뿐만 아니라 자영업자의 달러 대체 수출입 결제 용도로 스테이블 코인을 구매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보유한 원화를 은행에서 달러로 환전하는 것보다,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을 매수하는 게 훨씬 쉽기 때문이다. 스테이블 코인 매수는 수량 제한도, 시공간의 제약도 없다. 수수료와 거래 시간을 줄일 수 있고, 달러를 보유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도 누릴 수 있다.
기자가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에서 100만원 상당의 테더를 구매해 환전소를 이용한 결과, 96만 4000원을 받을 수 있었다. 환전 수수료가 약 4%인 셈이다.
환전 금액이 커질수록 수수료는 낮아진다. 환전소를 운영하는 A 씨는 "100만 원 단위의 소액은 4%, 1000만 원 이상은 3%의 수수료를 받는다"며 "고액을 거래하는 경우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계약서도 작성한다"고 했다.
환전 방법은 간단하다. A 씨의 가상자산 지갑 주소로 테더를 송금하면 수수료를 뺀 금액을 1분 내로 현금으로 받을 수 있다. 환전소는 고객이 송금한 테더를 해외 거래소에 다시 판매해 수익을 창출한다.
직접 환전소를 방문하지 않고 계좌이체를 이용하면 더 저렴하다. 강남에서 또 다른 환전소를 운영하는 B 씨는 "계좌이체를 이용하면 금액 상관없이 1.5%의 수수료가 적용된다"고 전했다.
거래소가 있는데도 일부 투자자들이 강남 일대 '테더 환전소'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거래 물량이 많을 때 환전소를 찾는 경우가 많다.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수억원어치 테더를 한 번에 매도하려고 하면 거래소 내 테더 가격이 일시적으로 떨어질 수 있다. 유동성이 적은 거래소일수록 그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따라서 대규모 거래를 하려는 투자자들은 주로 환전소 같은 장외거래(OTC) 수단을 이용하게 된다.
법 망을 피하기 위해 환전소를 악용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업비트, 빗썸 등 가상자산 거래소는 실명인증(KYC)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다 자체 자금세탁방지(AML) 시스템도 갖추고 있어 자금세탁이 목적인 경우 환전소 같은 대체 수단을 써야 한다.
1970년대 무역 규모가 증가했을 당시 은행보다 환전이 쉬운 명동 일대 암달러상들이 인기를 얻었듯, 가상자산 시장 규모가 커진 요즘에는 강남 일대 테더 환전소를 찾는 사람들이 생긴 셈이다.
텔레그램과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도 저렴한 수수료로 테더를 거래하는 개인 간 거래(P2P)가 성행하고 있다. 테더를 이체하면 현금을 계좌로 이체받거나 퀵 서비스로 배송받는 방식이다.
일명 '손대손거래'로 불리는 개인 간 대면 거래는 최대 1% 이하의 수수료로 테더를 환전할 수 있어 인기다. 수백 명이 모인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만나 장소를 정하고 테더와 현금을 직접 교환하는 방식이다. 10억 원 이상을 거래하는 사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 일부업자는 고객이 원하는 장소로 찾아가 대면 거래하는 출장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이 같은 환전소들은 '규제 사각지대'에 있다. 법정화폐와 가상자산 간 교환이 이뤄지므로 원칙적으로는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상 가상자산사업자로 신고해야 하지만, 소규모 환전소들은 이 같은 신고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정재욱 법무법인 주원 파트너 변호사는 "환전소는 가상자산 매도·매수·교환을 중개·알선·대행하는 행위에 해당할 수 있어 원칙적으로는 가상자산사업자로 신고한 후 영업하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테더 환전소, 카카오톡 채팅방들은 신고없이 일상으로 스며들고 있다. 금융당국도 이같은 상황을 인지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가상자산감독국 관계자는 "환전소의 행위가 가상자산사업자로 규제할 정도의 가상자산 매매 '영업'에 해당하는지 법적으로 판단하기 애매한 부분이 있다"며 " FIU(금융정보분석원)에서도 고민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단, 자금세탁 위험은 인지하고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자금 세탁 위험은 당연히 있다"며 "이런 상황이 만연하면 대책을 마련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편집자주 ...정부의 외면에도 '달러'처럼 쓰이는 '달러 코인'이 일상에 침투하기 시작했다. 달러와 연동된 '스테이블 코인' 테더(USDT) 얘기다. 달러 기축통화국 미국이 용인하면서 테더 이용이 급증하고 있다. 뉴스1은 과거에는 없던 달러 코인 현상을 진단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통해 나아갈 길을 함께 모색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