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정수영 기자 = '가난한 자들의 교황'이라 불리며 세계인의 존경을 받았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21일(현지 시각) 88세의 나이로 선종했다. 그는 교황 즉위 후 1년 5개월 만에 방한해 신자(信者)를 비롯해 수많은 한국인을 만나고 미사를 직접 집전하는 등 생전에 한국과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3월 즉위 뒤 2014년 8월,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먼저 한국을 찾았다. 가톨릭교회의 수장이 한국을 방문한 건 1989년 요한 바오로 2세 이후 25년 만이었다.
교황은 4박 5일간의 방한 동안 숱한 한국인들을 만나며 따뜻한 사랑을 전했다. 한국 천주교 순교자 124명을 복자(福者)로 추대했고, 충북 음성 꽃동네를 방문해 장애인들과 만났으며, 아시아 청년들에게 늘 깨어 기뻐하며 세상 속으로 나아갈 것을 격려하기도 했다.
교황은 한국 방문의 기억을 소중히 간직해 온 것으로 보인다. 2019년 교황청을 찾은 한국 주교들을 향해 "여러분이 (바티칸에) 오니 기쁨과 슬픔을 기꺼이 함께 나누며 환대해 준 한국 국민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며 "한국 방문에 대한 기억은 앞으로 활동하는 데 있어 끊임없는 격려가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국 천주교 역사에 대해서도 깊은 존경을 표했다. 특히 우리나라가 평신도로부터 자생적으로 신앙이 전파된 점을 높이 평가했다.
2017년 이탈리아 밀라노 대성당에서 열린 강론에서 "한국에 천주교가 처음 들어왔을 때는 3∼4명의 중국 선교사가 있었으나, 이어 두 세기 동안에는 (복음의) 메시지가 평신도들에 의해서만 전파됐다"고 설명하며 한국 천주교의 특별한 역사를 언급했다.
교황은 이후 정진석 추기경 선종 때도 "깊은 슬픔을 느꼈다"며 추모 메시지를 전달했고, 성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기념일에는 우리 국민과 천주교 신도들에게 축복의 메시지를 전하는 등 한국 교회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한반도 평화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왔다. 교황은 2014년 방한 당시 서울 명동성당에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직접 집전하며 "모든 한국인이 같은 형제자매이고 한 가정의 구성원들이며 하나의 민족이라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더욱더 널리 확산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자"며 남북한을 위한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2021년에는 주교황청 외교단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북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사건을 언급하며 "한반도에서의 (남북) 관계 악화를 특별한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2023년 9월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성상 설치 축복식을 맞아 바티칸을 방문한 한국 천주교 대표단에도 "한반도의 평화를 언제나 생각하고 기도하고 있다"고 했다.
교황은 또 같은 해 12월 성탄 메시지에서도 "대화와 화해의 과정을 거쳐 한반도의 긴장이 풀리기를 기원한다"고 전한 바 있다. '한반도 평화'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10년 동안 중요하게 여겨 온 기도 제목이었던 셈이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1년 6월, 당시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를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에 지명함과 동시에 대주교로 승품했다. 한국인이 교황청 차관보급 이상의 직위에 임명된 것은 유흥식 대주교가 처음이었다. 이후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2022년 5월, 바티칸 사도궁에서 유흥식 대주교를 신임 추기경으로 임명했다.